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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진도에 들어가기 위해선, 진도 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대교를 건너다 보면 눈 앞에 커다란 타워가 하나 보인다. 그게 바로 망금산 정상에 위치한 진도 타워다.

진도 타워에서 해남쪽을 바라다 보면 건너온 진도 대교가 보이는데 그 밑에 명량 해전으로 유명한 '울돌목'이 있다. '목처럼 갑자기 좁아진 해로, 바닷물이 간조와 만조의 때를 맞추어 병의 목 같은 좁은 곳을 일시에 지나가므로 울돌목의 조류는 거세기로 이름이 높다. 남곤(南袞)은 시에서 ‘붉은 비 내리고 녹음은 살찌는데 거센 바람이 물결을 치매 조수(潮水)소리가 장하구나’라고 했다. 조수가 요란한 곳임을 표현하는 글귀이다.' 실제로 눈 앞에서 '울돌목'-울돌목은 진도 대교를 건너자마자도 볼 수 있다. 그 곳이 진도 타워보다 더 울돌목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을 보니 이순신이 명량 해전을 앞두고 말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말이 정말 실감났다. 조류가 워낙 세 자칫 빠지기라도 한다면 끝없이 생겨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몇 십 미터쯤 쉬이 떠내려갈 것 같았다. 이런 곳이니만큼 12척의 배로도 수백 척의 왜선을 침몰시킬 수 있었던 듯 하다.

진도 타워에서 본 진도. 진도는 조선 시대 유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유배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근처 관아에서 유배자를 감당할 식량이 부족하다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렸다 한다. 그러나, '귀양객들 대부분 중앙 정계의 당파싸움에서 밀려난 양반 식자층이었으니 학문과 사상이 깊은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노래나 글, 그림으로 실의의 시절을 달랬고 서당을 열거나 개인적 교분을 통해 진도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소양을 전파했다. 진도에 유달리 서화예술이 발달한 데는 그 영향이 컸다' 한다.